중세 시대 서기 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 시기에는 인쇄 신문이 발달했고, 이슬람교의 확장 기세가 꺾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롤링거 왕조가 유럽을 되살려냈고 십진법 계산 체계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서기 700년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쇄 신문 등장 - 서기 700년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세력이 확장되자 중국 황제들은 국내 사정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관료들은 그 수단을 물색하던 중 옛 한나라의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앙관청과 지방관리들 사이에 주고받던 연락보고 문서인 저보(邱報·Tipao)였습니다. 통치자들은 이 공식문서를 통해 지방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보는 곧 목판 형태로 제작이 되었고 글자를 인쇄하여 배포하는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슬람교 확장 기세가 꺾이다 - 서기 732년
이 당시에 서유럽은 이슬람권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위기를 느끼며 동요했습니다.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권으로 바뀌었고,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베르베르(Berber)족도 이미 이슬람 군대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스페인 남부 지역 코르도바를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총독관 압다라만(Abdar Rahman)의 손에 아키텐(Aquitaine) 지역이 무너졌습니다. 이때 프랑크족의 지도자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은 이슬람교도의 침입을 막아내려 군사를 모았습니다. 그는 이슬람 군대에 맞서 싸우며 프랑스 남서부 지역까지 밀어냈고, 오늘날 프랑스 중부 지역의 투르(Tours) 전투에서도 이슬람 군대의 북진을 막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이로써 왕성하게 뻗어나가던 이슬람교의 세력은 카를 마르텔의 방어에 막혀 더 이상 유럽으로 뻗어나가지 못했습니다. 카를 마르텔은 혼란이 수습되자 아키텐과 동맹을 맺고 오늘날 남서프랑스를 장악 하는 왕의 자리에 올라 유럽에 새로운 카롤링거(Carolinger) 왕조가 탄생하는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는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가 바로 그의 손자입니다.
만약 투르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가 승리를 거뒀더라면 이슬람교가 유럽으로 확산됐을까요?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학자들 간에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프랑크족이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지역인 고대 갈리아(Gallia, 영어 명 Gaul)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 - 서기 751년
프랑크왕국의 무능한 메로빙거(Merovinger) 왕조와의 권력투쟁을 통해 카를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 3세(Pepin III)가 비로소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부터 시작된 카롤링거(Carolinger) 왕조는 8세기 중엽 유럽이 되살아나게 되는 문을 열었습니다. 카롤링거 가문의 왕들은 앵글로색슨의 지식인층, 즉 아일랜드와 영국의 수도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그들의 정치적인 조언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게르만족 선교에 나섰던 성 보니파키우스(St. Bonifacius)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이게 로마 교황은 여전히 동로마제국의 수도 비잔티움을 정치적 세력으로 견제하고 있었는데요, 카롤링거 왕조는 신권정치의 왕권을 세움으로써 로마 교황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는 효율적으로 군사력을 활용하고 독일 지역까지 기독교 전도에 역점을 두면서 처음으로 유럽을 통일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마침내 오늘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지역까지 뻗어나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되고, 이 시기에 유럽의 문화 경향이 특징지어집니다. 카롤링거 왕조가 끝난 뒤 프랑크왕국은 동서로 나뉘었고, 이는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로 이어졌습니다.
십진법 계산 체계 확산 - 서기 771년
십진법에 따른 계산법이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특정한 상징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0부터 9까지 힌두의 숫자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물은 771년 바그다드, 이슬람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만수르(al-Mansur) 시대의 궁정에서 나온 서판입니다. 그 서판은 인도에서 온 학자가 천문학에 대해 쓴 것이었습니다. 십진법을 활용한 계산법은 인도, 곧이어 아랍권까지 확산되면서 수학의 발전에 커다란 기폭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