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도시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3100년경 고대 사회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권력이 탄생했습니다.
오늘은 고대 역사 속에서 중앙 정부의 형태가 시작된 내용과 이집트 파라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중앙 정부의 시작 - 기원전 3200년경
기원전 32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형성된 도시 국가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이 지역의 도시 국가들 중 하나였던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 위치해있던 우르크(현재 이라크 지역)는 기원전 3200년경 천 에이커에 이르는 땅을 주거지와 시장, 사원 구역으로 나누었고, 도시 전체를 1.8미터 높이의 벽으로 둘러쌓았습니다. 적어도 15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신전과 사원들은 신성한 수호자에게 바치는 인류 최초의 예술적 기념물이었습니다. 거리의 건축물보다 무려 12미터나 높게 지은 사원은 신에 대한 숭배를 의미하였으며 금, 은, 동색과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를 자랑하던 우르크의 모습은 외부 세력의 정복욕을 자극하게 되었죠. 전쟁을 통해 군사력을 앞세워 부를 축적해온 왕들은 전쟁터에서 하나둘씩 사라졌고, 그들의 왕국도 함께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2. 아메리카 대륙의 도시 정착 - 기원전 3100년경
기원전 31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안데스 산맥 주변의 부족들이 남아메리카에서 도시를 형성하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긴 시기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가 생겨난 때와 거의 동시대의 사건입니다.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이곳은 아스페로입니다. 이곳은 페루의 북쪽 해안 지역으로, 최소 6개의 피라미드 양식 신전과 석재, 점토 구조물들이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장 큰 규모의 신전은 높이가 10미터 이상이고 하단 너비는 40미터에 이릅니다. 이 신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종교적 건축물입니다. 이 피라미드 시전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주민들에게 바다는 생계 수단의 상당 부분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일종의 숭배 행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외에 카랄과 같은 도시 시설물은 무역, 직조, 악기, 수로, 기록 보관 등의 흔적을 나타냅니다. 이는 당시 안데스 산맥의 도시 사회도 서구 문명의 기반을 형성했던 서아시아만큼이나 발전된 수준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이집트 파라오의 등장 - 기원전 3100년경
상/하 이집트를 하나의 국가로 융합하는 정치/문화적 통일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기원전 3100년경 고대 사회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권력인 이집트의 왕 '파라오'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집트의 통일은 전통적으로 나르메스 또는 메네스라고 불리는 정복왕의 업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집트의 문화는 기원전 3100년경부터 융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헬리오폴리스, 테베스, 멤피스와 같은 도시들이 하나씩 등장했고 문자가 보급되고, 예술과 건축 양식이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파라오의 예술은 화려함과 사치가 넘쳐났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파라오보다 먼저 집권했던 수단의 왕들로부터 알아낼 수 있습니다. 파라오는 당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서 땅 위에 존재하는 신으로 여겨졌고, 인간과 신성의 매개자였습니다. 그래서 파라오들은 살아있는 동안 절대 권력을 누렸으며, 죽어서도 웅대한 묘지에 묻혔습니다. 무려 31대까지 이어온 파라오의 통치 아래서 이집트는 3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강력한 독립 국가를 유지했습니다.
4. 실크 옷감 - 기원전 3000년
실크 옷감은 누에고치에서 가는 실을 뽑아 만드는데, 이는 오늘날 가장 순수한 천연 직물을 만드는 양잠업의 한 과정입니다. 이 실크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광대한 무역로의 이름이 될 만큼 유구한 명성을 떨쳤습니다. 실크가 옷감의 형태로 짜여져 처음 선보인 시기는 기원전 3000년경의 일입니다. 중국 동부의 황하 분지에서 농촌을 이루며 살았던 양 샤오 족이 그 주인공입니다. 실크를 생산하는 기술은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긴 했으나, 기원전 2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중국 전역에서 실크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실크의 역사 속에서 중국은 실크 생산에서만큼은 독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 고가의 상품을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심지어 로마까지 실어 나를 수 있었습니다.
5. 종이를 만들다 - 기원전 3000년경
기록매체로서 파피루스(종이)를 개발하게 되면서, 가벼운 종이 묶음에 적힌 정보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파피루스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라는 이름을 가진 습지 갈대를 이용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이집트의 종이 생산 공들은 파피루스의 줄기 안쪽 부분을 길고 가는 조각으로 잘라내어 직각의 천 틀 두 곳에 나란히 펴놓았습니다. 이 두 개의 틀을 겹쳐서 물을 먹이고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갈대의 수액을 빼내었고, 이것이 한 장의 파피루스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피루스를 밀가루 반죽으로 이어 붙여 긴 두루마리의 형태가 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갈대로 만든 펜과 여러 색의 잉크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 책의 등장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문자를 터득한 저술가를 양산했고, 이들은 과학, 역사, 건축, 종교, 의학 등 여러 가지에 대한 생각을 손쉽게 적어서 보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두루마리를 통해 고대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집단 지식과 문화 관습이 널리 퍼지고 후대에까지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6. 최초의 피라미드 건설
임호텝은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첫 번째 의사이자 이집트의 첫 번째 피라미드를 지은 건축가였습니다.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긴 첫 번째 기술자이자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임호텝은 평민으로 태어나 파라오 조세르의 통치 시대(기원전 2630년~2611년) 동안 능력 있고 명석한 행정가로서도 이름을 떨쳤습니다. 사후에 신격화되었을 정도로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들은 후대에 의해 상당 부분 미화되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호텝의 지위는 물론 주변의 평판은 그가 의사로서 가지고 있던 의술에 대한 신뢰를 높여줬습니다. 그의 가장 커다란 업적은 파라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건축한 것입니다. 높이가 무려 60미터에 달하는 이 피라미드는 역사상 처음으로 채석장에서 암석을 잘라내 만든 돌만을 사용하여 건축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위풍당당함을 구현한 임호텝의 파라오 무덤인 이 피라미드는 이후 수세기에 걸쳐 피라미드 건설 붐을 일으켰고,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건축물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